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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떤 탄원서

작성자
허민하
작성일
2018.03.14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932
내용
탄원서 / 작자미상
존경하옵는 검사님, 저는 지난달 20일 세상을 떠난 허영수의 어미 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글을 드려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이 글을 드립니다. 저는 태룡이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검사님께서 태룡이를 용서해 주시면 영수 대신 태룡이를 아들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비록 하나밖에 없는 제 아들을 숨지게 한 태룡이의 죄는 밉지만, 그렇다고 그 어린것을 교도소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태룡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친자식을 잃은 제가 아들 친구마저 어두운 골방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친자식을 잃은 대신 태룡이를 양아들로 맞게 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이 정말 제정신인지, 그게 정말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정작 제 자신도 잘 알 수 없어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을 속이는 일인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강하게 고개를 흔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한번 그런 생각을 하자 그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태룡이를 미워하던 마음이 없어지고 태룡이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만이 일었습니다.
태룡이는 엄마가 없는 아이입니다. 엄마도 없는 아이가 친구를 죽인 입장이 되어 지금 재판을 받고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다. 태룡이도 아마 죽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검사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태룡이는 그날 영수를 일부러 숨지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지만, 그 원인은 단순한 사고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영수와 태룡이는 교회 앞마당에서 장난기가 발동해 서로 장난을 치다가, 싸움이 된 것뿐입니다. 태룡인들 장난 끝에 영수가 콘크리트 바닥에 넘어져 숨질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둘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중학교를 같이 다닌 둘은 또 고등학교도 같은 학교를 다니게 돼 아주 형제 같았습니다. 둘은 늘 같이 붙어 다녔는데, 주로 태룡이가 우리 집에 자주 오는 편이었습니다. 태룡이는 인사성도 밝고 영수보다 의젓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다녀오겠다고 꾸벅 인사하고 나가던 두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둘이 장난을 치다가 한 사람이 죽을 줄이야 그때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영수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태룡이를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아들 앨범을 뒤적이다가 영수와 태룡이가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둘이 어찌나 다정해 보이던지 저는 태룡이만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수는 이제 제 곁으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시신을 대전 화장터로 보낼 때만 해도 금방이라도 영수가 눈을 뜨고 ´엄마!´하고 제 품안으로 파고들 것 같았습니다만, 이제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영수가 이제 제 곁에 있지 않다는 것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검사님, 영수의 죽음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잘못이 있다면 어미인 저의 잘못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걸 제 잘못으로 알겠습니다. 그러하오니 태룡이를 저의 품으로 돌려주십시오. 태룡이를 그대로 감옥에서 썩게 할 수 는 없습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이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주십시오. 검사님께서 태룡이를 용서해 주시면 태룡이를 아들 삼아 세 딸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지금 태룡이를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태룡이는 평생 고통스러운 일생을 살게 될 게 뻔한 일입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들도 다들 제 뜻에 따른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탄원서를 검사님께 보내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8년 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묘에 다녀올까 합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따라 죽고 싶었던 마음을 아들이 다 잡아 주었는데, 이제 제 아들이 죽어 흔들리는 마음을 남편을 통해 다잡고 싶습니다. 검사님, 부디 아들 잃은 이 어미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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